*이 글은 노들 계간 소식지 <<노들바람>> 2018년 여름 115호에 실린 글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노들에 유기농 쌀을 보태주는 한살림 일꾼들 /정서윤·김유미>를 재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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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한살림수도권실무자연합회 연합지회 정서윤 님 인터뷰

 

야학에선 ‘먹는’ 일이 참 뜨겁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 잘 챙겨 먹을 돈이 부족한 사람, 간만에 돈이 생겨도 들어갈 식당이 없는 사람… 노들은 밥상을 둘러싸고 정말, 다양한 고민이 펼쳐지는 곳이다. 별 특별할 거 없는 비장애인인 나는 이런 야학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 모 생협에 유기농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농약 식재료를 주문하곤 했다. 땅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고, 고기를 줄이고, 가공식품을 끊고 그러는 게 내 밥상의 약속 같은 거였다. 이렇게 나 혼자 먹고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 고민을 야학으로 옮겨오면 머리가 아팠다. 야학의 일상과 내가 꾸리는 일상 사이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야학에 식구는 많고 돈은 부족하고 일손도 부족하고… 값 비싼 유기농, 무농약이 웬 말인가 싶게, 여전히 밥 한 끼 못 챙겨먹어 배고픈 사람이 많은 공간이 야학이었다. 덕분에 나는 자주 소화불량에 걸렸다. 어쨌든 야학은, 이 공간에 밥 못 먹는 사람은 없어야한다는 결의 하나로, 2014년 아주 어려운 논의 끝에 급식을 시작했다. 이후 돈이 마구마구 새나가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부터 학생들의 밥값을 마련하기 위해 급식비 마련 후원주점을 열(어야했)었다. 야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한살림 사람들이 찾아왔다.

2015년 여름이었던가. 꿀맛 나는 포도 상자와 쌀을 들고 한살림 사람들이 야학에 찾아왔다. (나 혼자) 오래전부터 잡고 싶었던 손이었기에 아주 기뻤다. 그리고 그 뒤 언제부턴가 한살림 유기농쌀이 매달 60kg씩 야학으로 오고 있다. 야학에서 먹는, 어느 날의 밥은 한살림 유기농 쌀로 지어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 쌀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야학에 오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노들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주기를 바란다. │ 인터뷰·정리 : 김유미

 

Q 안녕하세요. 노들바람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A 한살림수도권실무자연합회 연합지회 정서윤 실무자라고 합니다. 연합지회에서는 넘버투 부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 연합지회는 2016년 한살림수도권실무자연합회에서 분화되어 창립된지 올해로 3대 째가 되었는데요, 저는 작년 2대 때 대의원을 하면서 노사협의회의 역할을 하는 연합일터살림협의회의 여성실무자 대표위원으로 들어가서 활동했습니다. 이런저런 활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어느새 부지회장으로 지명이 되었네요.(연합지회의지회장은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하고 부지회장은 지회장이 지명하는 구조입니다.) 본업은 디자이너로 한살림연합 홍보실에 소속되어 한살림의 물품포장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어쩌다 한살림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저는 그저 평범한 구직자였습니다. 첫 직장이 NGO단체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는 환경과 생명 분야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정도의 사람이었지요. 이런저런 회사들을 전전하다가 백수가 되고 구직하며 다시 이쪽 분야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와중에 한살림 채용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한살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한살림은 직장으로 먼저 접하고 겪게 되었어요. 벌써 햇수로는 6년차가 되었네요.

 

Q 한살림 실무자협의회는 어떤 곳인가요? (한살림 소개도 같이 해주세요)

A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과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물품을 이해하고 믿으며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결성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입니다. 1986년에 시작하여 30년이나 된 유서깊은 조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운동을 통해 생산자의 안정된 생산 기반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은 그만큼 건강하고 좋은 물품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한살림 실무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실무적인 일들을 맡고 있는 노동자인데요, 한살림수도권실무자협의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살림의 조직 구조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한살림의 시작은 함께였지만 30여년동안 성장하며 조직이 분화하여 현재는 여러 개의 조직으로 나뉘게 되었는데요, 물품을 만들고 물류, 전산, 홍보 등을 지원하는 한살림연합과 조합원을 지원하는 조직인 회원생협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수도권에는 한살림서울, 한살림경기남부, 한살림 고양파주, 한살림성남용인, 한살림수원이 있습니다. 수도권 내 위치한 이 여섯 조직은 인적 성장을 위해 서로 간에 인사교류를 하면서, 실무자들이 연대하며 조직의 비전을 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조직간에 동일한 임금과 복지체계를 가질 필요가 생겨 다 함께 모여 한살림수도권실무자협의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한살림 규모가 점점 더 성장함에 따라 각 조직별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전달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고 2016년 연합지회를 시작으로 각 여섯 개의 지회가 만들어지거나 준비중에 있습니다.

 

Q 저희에게 매달 쌀 60kg을 보내주고 계신데요. 노들장애인야학에 쌀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
니다.

A 2015년도에 한살림에 쌀 대적체가 있었는데요. 그 당시에 실무자들이 쌀을 각자 한 가마씩 책임소비하자는 논의가 펼쳐졌습니다. 논의과정에서, 한살림의 가치가 담긴 소중한 쌀인 만큼, 실무자들이 스스로 소비 확대에 동참하는 것뿐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모였습니다. 그중 한 곳이 노들야학이었고, 처음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활동을 계속 하면 좋겠다는 평가도 있었고, 2016년 1월 한살림 수도권실무자협의회 ‘연합지회’가 창립하여 1기로 출범할 때 1호 안건으로 한살림 쌀 나눔을 정례화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또 이런 활동을 생산자와 실무자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여 한살림 쌀 주 생산지 중 한 곳인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홍천연합회’, 쌀 도청처인 ‘뫼내뜰영농조합’, 그리고 실무자협의회 ‘연합지회’가 같이 쌀을 모아 노들야학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연합지회에서는 매년 훈훈카페, 훈훈주점, 나눔장터 등의 행사를 열어 노들야학을 후원하기 위한 쌀 구입비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Q 저희에게 오는 쌀을 농사지은 분들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쌀 자랑도 해주세요. 맛있어요.

A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홍천연합회는 내면공동체, 내촌공동체, 동홍천공동체, 두미반곡공동체, 명동리공동체, 서석공동체, 신시공동체, 어유포공동체, 유치리공동체, 주음치공동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전국 최초로 농약없는 마을을 선포했던 명동리공동체와 최원국 생산자님을 소개합니다.

 

손끝농사로 쫀득한 손맛 나는 찹쌀을 내다

 

최원국 생산자 │ 홍천 명동리공동체 (2012.11.18.)

한살림연합 소식지 17호에 실린 글입니다.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 선포했던 명동리공동체
공동체 소개

명동리공동체는 경기도 양평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인 홍천군 남면의 양덕천을 가운데 두고 5개의 자연부락이 강원도에선 제법 넓은 뜰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1993년 8명의 생산자가 친환경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2001년에는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을 선포하여 40여명의 생산자가 함께하였으나 현재는 21명의 생산자가 벼, 잡곡, 채소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2002년 체험관 건립을 시작으로 단오잔치, 대보름행사 등 다양한 도농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한살림의 소비자 조합원과 생산자의 교류에 앞장서는 모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현재 공동체 생산자들의 고령화로 후계농과 한살림 친환경 필지 보전에 대한 정책적 고민과 배려가 필요한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역사

· 1993년 마을의 선도적인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
· 1994년 8농가가 모여 친환경 작목반 구성
· 1999년 친환경 농업 특성화 시범마을육성사업 유치를 계기로 큰 발전 이룸
· 1999년 故박재일 회장의 권유로 한살림 생산공동체 가입 – 벼 80톤 수매
· 2001년 전국 최초로 마을 전체를 ‘농약없는마을’로 선포
· 2002년 친환경농업교육관 건립 (민속자료실,강의실, 숙박시설 구비)
· 2003년 전통 장담그기 체험장 건립
· 2005년 한살림 홍천생산자연합회 결성

공동체 회원 현황

21농가 / 총 42명 (남성 21명, 여성 21명)

필지현황

논 49,400평 / 밭 31,000평 /하우스 7,300평(50동)

주요물품

쌀, 잡곡류, 고추, 찰옥수수

원례회의
매 달 1회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필요시 수시로 진행

주소지

강원도 홍천군 남면 명동리 일대

인근명소

홍천강

 

농민 최원국. 그가 내민 명함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수식어가 간결하다. 올해 쉰아홉인 그가 농사를 지은 햇수만 마흔 해니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법도 하다. 그중 주관대로 농사한 햇수, 스스로 농사꾼이라 여기며 땅을 일군 해가 서른다섯 해다. 군대 간 3년, 중장비 운전기사 3년을 뺀 햇수다.

그는 난 지 100일 만에 이곳, 홍천군 남면 명동리에 왔고 한곳에서 자라 뿌리내렸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500~600평 쌀농사를 지었지만 집에는 늘 쌀이 귀했다. 내다팔기도 빠듯했던 사정을 알기에 스스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젊은 패기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중장비운전을 배웠고 그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일한 지 몇 해, 그는 자기 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진짜 농부가 되기로 했다.

농민 최원국은 33,057.851㎡ 논에서 찹쌀을, 밭 6,611.57㎡에서 고추·찰옥수수·들깨·콩을 내고 있다. 지금은 내외가 거뜬히 감당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1970년대 식량증산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그도 농약을 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던 때, 이웃에 살던 농부가 무농약농사를 제안했다. 20년 전인 1994년, 여섯 가구가 건강한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합쳤다. 지금은 서른다섯 농가가 된, 홍천생산자연합회 명동리공동체는 이렇게 시작됐다.

뜻은 좋았지만, 높이 자라는 풀과 늘어가는 벌레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틈만 나면 유기농을 먼저 시작한 곳을 견학했다. 목초액, 현미식초, 청초 발효액 등 제초에 좋다는 것도 실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탐탁찮았다. 실패를 거듭한 지 네댓해 되던 1998년 오리농법을 알게 되었다. 오리는 풀이 자라지 않게 했고 벼물바구미 같은 해충도 먹어 없앴다. 예상 외로 대풍년을 맞았다. 이듬해인 1999년, 유기농가가 열다섯으로 늘어났다. 정부에서 친환경농업특성화시범마을로 지정했고, 성남 지역의 소비자와 연결해 주어 판로도 확보했다.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을을 맞았고 잘 영근 쌀을 들고 성남으로 갔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시골에서 쌀을 보내오고 있다, 식구들이 얼마 없다는 말을 하며 쌀을 사 주지 않았다. 막막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살림의 박재일 전 회장이 이 마을을 방문해 어렵게 농사지은 벼를 한살림에서 소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초상집이 잔칫집이 된 날이다. 그렇게 해서 2000년부터 한살림과 인연이 닿았다. 살 길을 찾은 최원국 생산자와 유기농부들은 주민을 설득했고, 2001년 명동리는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을 선포했다. 힘든 유기농사를 짓자고 말로만 할 수 없어, 먼저 나서 이웃의 둑에 김을 매주기도 했다. 그리고 연구를 거듭했다. 2003년 조류독감이 돌면서, 우렁이농법을 시작했다. 우렁이는 풀만 먹고 해충을 먹지 않아 염려가 되었지만 다행히 피해가 크지 않았다. 독성이 강한 풀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유기 해충퇴치제를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물 자체가 튼튼해져 병충해를 거뜬히 견뎌낸 것이다. 화학비료를 쓸 때는 도열병이나 이화병나방 폐해가 심했는데 그런 일도 사라졌다.

제 생명을 스스로 지키는 작물들이 기특하다. 어느덧 올해도 찰벼가 노랗게 영글었다. 농사 다 지었다고 생각해도 될 텐데 그는 오늘도 두둑 어딘가로 논물이 흐르지는 않는지 발품을 팔고, 듬성듬성 자란 피를 손으로 죽 뽑는다. “유기농은 손끝농사”라는 그의 손이 억세고 야물다. 손끝농사라 농부의 손맛을 탄 것일까. 햅쌀로 지은 밥 한 수저 뜨니 윤기가 자르르. 고것 참 찰지다.

글·사진 김세진《살림이야기》편집부

 

홍천 뫼내뜰영농조합

_한살림생산자연합회 소식지 창간준비 3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주형 대표 │ 홍천 뫼내뜰영농조합

 

고향이 홍천군 명동리였다. 81년도에 제대 후 잠시 타향살이를 했지만 부모님을 모시려고 홍천으로 왔다. 그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통 하듯이 관행농사를 지었지만 유기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차 가지게 되었다. “1996년에 명동리 친환경농업 작목반이 출범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유기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2001년도는 홍천군 명동리에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 선포식도 있었죠. 자연스럽게 한살림을 알게되었지요. 뫼내뜰영농조합법인(이하 뫼내뜰)은 2005년도에 결성되었는데 처음부터 함께 결합해 실무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말농사긴 했지만 짓던 농사를 유기농으로 하는 것도 물론이었죠. 한살림이 이야기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그 중심에 유기농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법인에서 일하는 실무자가 40여 명이라고 들었다. 뫼내뜰에서 15년 넘게 함께 했지만 올해부터는 대표를 맡으면서 전체를 다 관장하고 살펴야하는 책임감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뫼내뜰의 근무 환경에 대해서 묻는다.

“오랫동안 실무자들과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과 상황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을 편지를 쓰게하고 개인 면담을 했습니다. 복지향상을 위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 보다는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같아요.”

 

6년이 지난 일이지만 2011년도 7월에 물품사고가 있었다. 머윗대와 김치류 결품을 막으려 출하기준과 다른 물품을 외부에 구입해 한살림에 출하한 사건이었다. 신뢰와 믿음이 땅으로 떨어진 사건이었다. 들추기에 아픈 과거지만 이주형 대표에게 그 당시 상황과 생각, 그리고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각 부서장들이 이끌어가는 체계가 아니었어요. 시스템이 부족하고 관리체계가 부실했어요. 정직하게 땀 흘려서 일궈온 한살림의 소중한 자산이 신뢰인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 잘못을 해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 후로 일을 그만두는 직원도 발생했었고 한 달 정도 전 직원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무보수로 일을 했어요. 재발방지를 위해서 한살림연합과 함께 특별점검을 하고 내부적으로 물품관리체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물품공급이 재개되었는데 서로들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요. 정말 많이 반성하고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도농교류도 꾸준히 펼쳐갔습니다. 말로만 달라졌다고 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을 계속 만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게 컸죠.” 실제 뫼내뜰은 도농교류의 일환으로 고들빼기, 오이소박이 담그기 같은 반찬 만들기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도농교류는 한살림성남용인과 함께한 농지지킴이 활동이라며 말을 잇는다. “2012년, 뫼내뜰이 농지를 약 800평 임대를 하여 친환경농산물을 생산, 공급하고 있었는데 농지 임대가 불가한 상황이 벌어졌어요. 인증토지가 일반인에게 매매가 될 경우 친환경농지 면적이 줄어들게 되고 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자매결연 지역한살림인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들이 농지지킴이 운동을 펼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그 땅에서 계속 유기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뫼내뜰 실무자들이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고 모내기행사, 벼베기 체험행사를 하고 있어요. 논 한편에 웅덩이를 만들어서 논습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지요.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들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뫼내뜰의 물품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품목은 김치다. 이주형 대표가 소개하는 뫼내뜰에 대해서 들어 본다.

 

“홍천군내 200여 명의 한살림 생산자가 약 300ha의 농지에서 재배하는 멥쌀, 찹쌀, 흑미 등의 곡류와 검정콩 등 29개 품목의 잡곡. 채소 재배 작목반에서 재배하는 40여 가지 과채류를 가공해 김치류, 선식, 미숫가루 등을 공급하고 있어요. 내년에 동결건조기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 있는데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지금보다 다양한 품목을 개발할 수 있고 경영 안정화의 큰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바닥에 떨어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뫼내뜰을 보면 그렇다.

 

비록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만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조합원에게 전달되어 다시 신뢰를 얻은 것이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한살림생산지로 사랑 받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고 혁신하겠다고 다짐한다.

 

Q. 저희 야학에 들다방이라는 까페가 있는데, 여기서 판매하는 과일차 제품 중 몇 가지가 한살림 제품이에요. 유자차, 생강차, 모과차 같은 거요. 과실은 농약을 안 쓰고 키우고, 설탕은 몸에 좋은걸 쓴다고 해서 기분 좋게 쓰고 있는데, 가격 부담은 좀 있습니다. 아무튼 한살림 제품이 진짜 좋은 게 맞나요? 어떤 점에서 좋은 건지 자랑해주세요. 가격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A 한살림 차는 한살림 생산지에서 직접 원물부터 농사지어 가공까지 하고 있는 물품입니다. 농사지을 때 생산자들의 정성이 하나하나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보존제나 인공첨가물은 전혀 넣지 않고 원물과 유기농설탕으로만 만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중의 제품에 비해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원물 본연의 건강한 맛을 잘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한살림 물품가에서 약 75%는 생산자에게 돌아가고 있어요. 물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생산자들의 땀과 무농약 이상으로 키우기 위해 들이는 정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이밖에 노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A 한살림 쌀 맛있게 드시고 계신가요? 더 많이 지원해드리기 위한 방안도 여러가지로 고민 중입니다. 앞으로도 연대를 꾸준히 하며 자주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들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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